
체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우리 몸의 모든 생화학 반응이 최적의 온도에서 일어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상 체온인 36.5도에서 37도 사이에서 효소 활성이 가장 높고 세포 대사가 원활하게 진행된다. 특히 면역 시스템은 체온에 매우 민감하다. 체온이 낮으면 백혈구 활동이 둔해지고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방어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감염 시 발열하는 것은 몸이 면역 반응을 강화하려는 자연스러운 방어 기전이다. 현대인들은 에어컨과 난방으로 쾌적한 환경에 익숙하지만, 역설적으로 체온 조절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 면역학 전문가로서 수많은 연구와 임상 경험을 통해 확인한 사실은 체온 관리가 면역력 강화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체온과 면역의 과학적 연관성과 건강한 체온을 유지하는 실천 방법을 소개한다.
체온 조절 메커니즘과 면역 반응의 상호작용
인체는 항온동물로서 외부 환경이 변해도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시상하부에 있는 체온 조절 중추가 피부와 내부 장기의 온도 수용체로부터 정보를 받아 열 생산과 열 방출을 조절한다. 추우면 근육을 떨게 해서 열을 만들고 혈관을 수축시켜 열 손실을 막는다. 더우면 땀을 흘리고 혈관을 확장시켜 열을 방출한다. 이런 정교한 조절 덕분에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런데 왜 체온이 면역과 관련이 있을까. 백혈구의 기능이 온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호중구, 림프구, 대식세포 같은 면역 세포들은 37도 전후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동한다. 체온이 1도만 떨어져도 효소 활성이 12퍼센트 정도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다.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병원체를 인식하고 파괴하는 과정이 느려진다. 실제로 평균 체온이 낮은 사람들이 감기에 더 자주 걸린다는 역학 조사 결과도 있다. 발열은 감염에 대한 자연스러운 면역 반응이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침입하면 면역 세포가 사이토카인이라는 신호 물질을 분비하고, 이것이 시상하부를 자극해 체온 설정점을 올린다. 체온이 상승하면 여러 이점이 있다. 첫째, 병원체의 증식이 억제된다. 많은 바이러스와 세균은 37도 이상에서 생존과 번식이 어렵다. 둘째, 백혈구의 이동과 활성이 증가한다. 고온에서 면역 세포가 더 빠르게 감염 부위로 이동하고 병원체를 공격한다. 셋째, 항체 생산이 촉진된다. B세포가 더 많은 항체를 만들어 바이러스를 중화시킨다. 넷째, 인터페론 같은 항바이러스 물질의 생산이 증가한다. 이런 이유로 가벼운 발열은 억제하지 않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 물론 고열은 위험하므로 38.5도 이상이거나 증상이 심하면 해열제를 사용해야 한다. 저체온도 문제다.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지면 대사가 느려지고 의식이 흐려지며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진다. 면역 기능도 심각하게 저하된다.
현대인의 저체온 경향과 면역력 저하의 연결고리
최근 연구들은 현대인의 평균 체온이 과거보다 낮아지고 있다고 보고한다. 19세기 중반 정상 체온으로 알려진 37도는 더 이상 평균이 아니다. 현대인의 평균 체온은 36.5도 전후로 측정된다. 여러 원인이 제기되는데, 가장 큰 요인은 신체 활동 감소다. 근육 운동은 열 생산의 주요 원천인데,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기초 대사량과 체온이 낮아졌다. 에어컨과 난방의 보편화도 원인이다. 항상 쾌적한 온도에 노출되면 체온 조절 능력이 퇴화한다. 몸이 스스로 열을 만들거나 조절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스트레스도 영향을 미친다. 만성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를 교란시켜 체온 조절에 문제를 일으킨다. 불규칙한 식사와 영양 불균형도 한몫한다. 특히 단백질과 철분 부족은 열 생산을 저하시킨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도 체온을 떨어뜨린다. 갑상선 호르몬은 신진대사를 조절하는데, 분비가 줄어들면 대사율이 낮아지고 체온도 내려간다.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체온이 낮은 경향이 있다. 근육량이 적고 체지방이 많으며 호르몬 변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월경 주기와 폐경기에 체온 변동이 크다. 노인도 체온이 낮다.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감소하고 혈액순환이 나빠지며 체온 조절 기능이 둔화된다. 그래서 노인들이 추위를 더 많이 타고 감염에 취약한 것이다. 저체온은 단순히 추위를 많이 탄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손발이 차갑고, 쉽게 피곤하며, 소화가 잘 안 되고, 감기에 자주 걸린다면 저체온을 의심해봐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체온계로 겨드랑이 온도를 측정해 본다.. 여러 날 재서 평균을 내되, 36도 이하라면 저체온 경향이 있는 것이다. 저체온이 지속되면 면역력뿐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이 악화된다. 대사가 느려져 살이 찌기 쉽고, 혈액순환이 나빠 부종이 생기며, 호르몬 균형이 깨져 생리불순이나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우울증과 불안 같은 정신 건강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건강한 체온 유지를 위한 생활 속 실천 전략
체온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운동이다. 특히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이 중요하다. 근육은 몸에서 가장 큰 열 생산 기관이다. 걷기, 조깅, 수영, 근력 운동 등을 규칙적으로 한다. 하루 30분만 운동해도 기초 대사량이 올라가고 체온이 상승한다. 아침 운동이 특히 좋다. 잠에서 깬 후 낮아진 체온을 올리고 하루 종일 대사를 활성화시킨다. 식습관도 중요하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한다. 단백질은 소화 과정에서 열을 많이 발생시킨다. 고기, 생선, 계란, 콩류를 충분히 먹는다. 생강, 마늘, 고추 같은 향신료도 체온 상승에 도움이 된다. 생강차나 대추차를 따뜻하게 마신다. 찬 음식과 음료는 피한다. 냉장고에서 꺼낸 것을 바로 먹지 말고 상온에 두었다가 먹는다. 아이스크림이나 차가운 물은 체온을 떨어뜨린다.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 음식 섭취는 열 생산을 자극하므로 아침을 먹어야 체온이 올라간다. 목욕과 반신욕도 효과적이다. 따뜻한 물에 20분 정도 몸을 담그면 체온이 상승하고 혈액순환이 개선된다. 단 너무 뜨거우면 오히려 피로하므로 38도에서 40도 정도가 적당하다. 족욕만 해도 전신이 따뜻해진다. 옷차림도 신경 쓴다. 배와 허리, 발목을 따뜻하게 유지한다. 내복을 입고 두꺼운 양말을 신는다. 목도리와 모자로 열 손실을 막는다. 하지만 너무 두껍게 입으면 땀이 나서 오히려 체온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적절히 조절한다. 수면 환경도 중요하다. 침실 온도는 18도에서 20도가 적당하지만, 이불은 충분히 따뜻하게 덮는다. 수면 양말을 신으면 발이 따뜻해져 숙면에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 관리도 필수다. 만성 스트레스는 체온 조절을 방해하므로 명상, 호흡, 취미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담배와 과도한 음주는 혈관을 수축시켜 체온을 낮추므로 피한다. 카페인도 과하면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갑상선 기능을 점검한다. 체온이 계속 낮고 피로, 체중 증가, 변비 같은 증상이 있다면 갑상선 호르몬 검사를 받는다. 면역력 강화를 위해 체온뿐 아니라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영양, 규칙적인 운동, 스트레스 관리를 종합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체온은 건강의 바로미터다. 자신의 체온을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낮다면 생활습관을 개선한다. 작은 변화가 면역력을 크게 향상할 것이다.